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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규정 용어 8개로 새벽 중계 버티는 법

하루만보를 2026. 9. 15. 00:44

표준 주말 슬릭 타이어 13세트 배정 — 소프트 8, 미디엄 3, 하드 2

새벽 중계를 규칙도 모르고 보다가 결국 항복한 이야기

새벽에 잠이 안 와서 F1 중계를 틀어놨다가 두 시간을 통째로 날린 적이 있다. 차는 빠르고 소리는 좋은데 해설이 하는 말은 한 마디도 안 들어왔다. 디알에스가 열렸다느니 파크 페르메가 어떻다느니 델타 타임을 지켜야 한다느니, 분명히 한국어인데 뜻이 하나도 안 잡혔다. 결국 중간에 순위표만 멍하니 보다가 잠들었고, 다음 날 검색창에 F1 규정 용어를 쳐봤는데 이번엔 설명이 너무 전문적이어서 또 튕겨 나왔다. 그래서 그때의 나 같은 사람을 위해 F1 규정 용어 여덟 개만 골라 사전처럼 정리해두기로 했다.

순서는 중계를 켜고 앉았을 때 실제로 튀어나오는 순서에 가깝게 잡았다. 억지 비유를 많이 섞었는데, 비유가 헐거워지는 지점은 내가 먼저 딴지를 걸어두겠다.

 

DRS (드래그 리덕션 시스템)

뒷차가 직선에서 리어윙 한 조각을 열어 공기저항을 줄이는 장치다. 저항이 줄면 같은 엔진으로도 끝속이 올라가니 추월이 쉬워진다. 다만 아무 데서나 아무 때나 여는 게 아니라, 서킷마다 미리 정해진 구간에서만 열 수 있다. 그 구간을 DRS 존이라고 부르고, 존에 들어가기 전 트랙 어딘가에 검출 지점이 따로 박혀 있다.

조건은 하나다. 그 검출 지점을 지날 때 앞차와의 간격이 1초 이내여야 한다. 1초 01이면 못 연다. 중계에서 0초 9라는 숫자를 띄우며 열린다고 외치는 게 이 얘기다. 고속도로 추월차로인데 앞차 꽁무니에 바짝 붙어야만 문이 열리는 구조라고 생각하면 얼추 맞다. 물론 고속도로 추월차로는 붙든 말든 그냥 뚫려 있으니 이 비유는 여기까지만 쓰자.

헷갈리는 지점은 두 개다. 첫째, 비가 오거나 사고로 위험 상황이 되면 레이스 컨트롤이 DRS를 통째로 막아버린다. 둘째, 예선에서는 앞차와의 간격 조건 없이 존에서 자유롭게 쓴다. 그래서 예선 랩타임과 결승 랩타임을 같은 잣대로 비교하면 안 된다. 결승 초반 몇 바퀴 동안도 DRS는 잠겨 있다.

참고로 두 상황 모두 DRS는 잠긴다. 위험 구간을 정리하는 중인데 뒷차가 날개를 열고 달려들면 안 되니 당연한 얘기다. 이 둘을 구분하기 시작하면 중계 화면 왼쪽 위 알림 한 줄만 보고도 지금이 전략을 짜는 시간인지 그냥 기다리는 시간인지 감이 온다.

 

세이프티카와 버추얼 세이프티카(VSC)

트랙에 사고차나 파편이 남아 마셜이 들어가야 할 때 쓰는 두 가지 장치다. 세이프티카는 말 그대로 실제 차가 코스로 나와 대열 맨 앞에 서고, 뒤에 붙은 경주차들은 추월 없이 줄줄이 따라간다. 버추얼 세이프티카는 차가 안 나온다. 대신 모든 드라이버가 구간마다 정해진 최소 기준 시간, 이른바 델타 타임보다 느리게 달려야 한다.

결과가 완전히 다르다. 세이프티카가 나오면 앞서가던 선두가 벌어놓은 30초가 그냥 증발하고 전체 대열이 한 덩어리로 붙는다. 이때 피트에 들어가면 잃는 시간이 평소보다 훨씬 적어서, 그 한 번으로 순위가 뒤집히는 경우가 흔하다. 버추얼 세이프티카는 모두가 똑같은 비율로 느려지기 때문에 격차가 대체로 유지된다. 손해가 줄긴 하지만 세이프티카만큼 극적이지는 않다.

그러니까 중계 보다가 갑자기 화면 왼쪽 위에 SC라고 뜨면 "아 순위 뒤집히겠구나"라고 생각하면 되고, VSC가 뜨면 "정리하는 동안 잠깐 느려지는구나" 정도로 보면 된다. 나는 처음에 둘 다 그냥 서행인 줄 알고 채널을 돌렸는데, 하필 그 사이에 판이 뒤집혀 있었다.

 

파크 페르메 (Parc fermé)

프랑스어로 닫힌 공원이라는 뜻이다. 예선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결승 출발까지 차량 세팅을 마음대로 못 바꾸는 상태를 말한다. 이 규정이 없으면 팀은 예선에서 극단적으로 가벼운 세팅으로 빠른 랩만 찍고, 결승 직전에 완전히 다른 차로 뜯어고쳐서 나올 수 있다. 그러면 예선 순위가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중계에서 "파크 페르메 위반으로 피트레인 출발"이라는 말이 나오면, 팀이 규정 밖의 세팅 변경을 택하는 대신 그리드에서 출발할 권리를 스스로 포기했다는 뜻이다. 보통 예선에서 차가 크게 망가졌거나, 결승 날씨가 예선과 완전히 달라져서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세팅을 바꾸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때 벌어진다.

여기서 흔한 오해가 하나 있다. 파크 페르메라고 차에 아예 손을 못 대는 건 아니다. 타이어 교체, 연료 주입, 정해진 범위의 점검과 정비는 그대로 허용된다. 전면 금지가 아니라 허용 목록 밖이 금지인 구조다. 나도 처음에는 밤새 차에 천 덮어놓고 아무도 못 만지는 줄 알았는데, 그랬으면 정비팀이 밤새 뭘 하는지 설명이 안 된다.

 

타이어 컴파운드 (소프트·미디엄·하드)

타이어 공급사가 주말마다 드라이 노면용 컴파운드 세 가지를 골라 가져오고, 사이드월 색으로 구분한다. 소프트는 빨강, 미디엄은 노랑, 하드는 흰색이다. 비가 오면 홈이 파인 타이어를 쓰는데 인터미디에이트는 초록, 물이 많이 고였을 때 쓰는 풀 웨트는 파랑이다. 화면에서 색만 봐도 지금 누가 무슨 타이어인지 알 수 있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표준 그랑프리 주말이면 드라이버 한 명에게 슬릭 13세트가 주어진다. 소프트 8세트, 미디엄 3세트, 하드 2세트다. 소프트가 압도적으로 많은 건 연습과 예선에서 소프트를 많이 태우기 때문이지, 소프트가 좋은 타이어라서가 아니다.

규정 하나만 더 기억하면 된다. 노면이 마른 상태로 치러지는 결승에서는 서로 다른 드라이 컴파운드를 최소 두 종류 써야 한다. 이 한 줄 때문에 사실상 모든 차가 최소 한 번은 피트에 들어온다. 그리고 소프트는 빠른 타이어가 아니라 빨리 닳는 타이어다. 한 바퀴는 제일 빠른데 열 바퀴 뒤에는 제일 느려져 있다. 비가 와서 웨트 타이어를 쓰게 되면 두 컴파운드 의무는 풀린다.

화면 왼쪽 순위표를 보면 드라이버 이름 옆에 작은 색 동그라미가 붙어 있다. 그게 지금 끼고 있는 타이어 색이다. 빨강이 줄줄이 흰색으로 바뀌는 구간이 오면 레이스가 후반으로 넘어갔다는 뜻이고, 갑자기 초록이 섞이기 시작하면 어딘가 비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숫자를 못 읽어도 색만 따라가면 흐름은 보인다.

 

페널티 종류 (5초·10초·드라이브 스루·스톱앤고)

가장 자주 나오는 건 시간 페널티다. 5초 페널티를 받으면 다음 피트 스톱에서 정비팀이 차에 손도 대지 못한 채 5초를 세고, 그 뒤에야 타이어를 갈 수 있다. 끝까지 피트에 안 들어오면 최종 기록에 5초를 그냥 더한다. 10초 페널티도 방식은 같고 숫자만 다르다. 여기서 제일 많이 틀리는 게 "피트에 5초 더 서 있는 벌"이라고 이해하는 건데, 정확히는 정비를 못 받은 채 서 있는 시간이라 손해가 체감보다 크다.

더 무거운 쪽으로 가면 드라이브 스루와 스톱앤고가 있다. 드라이브 스루는 피트레인을 제한속도로 통과해서 그냥 나오는 것이고, 스톱앤고는 자기 팀 박스에 정해진 시간 동안 서 있다가 출발하는 것이다. 참고로 피트레인 제한속도는 보통 시속 80킬로미터이고, 좁은 서킷에서는 시속 60킬로미터로 더 낮게 잡기도 한다. 여기서 과속해도 벌이 따라붙는다.

마지막이 페널티 포인트다. 위험한 주행을 하면 벌점이 붙고, 12개월 동안 12점이 쌓이면 다음 한 경기에 못 나간다. 점수는 받은 날로부터 12개월이 지나면 하나씩 사라진다. 운전면허 벌점과 구조가 똑같다. 여기에 부품 교체 한도를 넘겼을 때 다음 레이스 출발 순번을 뒤로 미루는 그리드 페널티까지 더하면, 중계에서 들리는 벌의 종류는 대충 이 다섯 가지 안에 들어간다.

초보가 제일 많이 당황하는 건 결승선을 1등으로 통과했는데 우승자가 바뀌는 경우다. 시간 페널티가 기록에 더해지면 순위가 뒤에서 뒤집힌다. 그리드 페널티도 마찬가지로 예선 순위표와 실제 출발 순번이 다르게 나오니, 예선 결과만 보고 잠들면 다음 날 아침에 한 번 더 헷갈린다.

 

블루 플래그와 블랙앤오렌지 플래그

깃발은 레이스 컨트롤이 드라이버에게 보내는 문자 메시지 같은 것이다. 블루 플래그는 한 바퀴 이상 뒤처진 차에게 "선두권 차가 따라붙었으니 비켜라"라고 알리는 신호다. 중계 보다가 하위권 차가 갑자기 라인을 열어주는 장면이 나오면 열에 아홉은 이것 때문이다.

블랙앤오렌지는 검은 바탕에 주황색 동그라미가 그려진 깃발인데, 네 차에 파손이나 이상이 있으니 반드시 피트로 들어와 고치라는 뜻이다. 무시하고 계속 달리면 더 무거운 벌이 따라온다. 벌이 아니라 안전을 위한 명령에 가깝다.

나머지 깃발도 한 줄씩만 알아두면 충분하다. 노란색은 앞에 위험이 있으니 속도를 줄이고 추월하지 말라는 뜻, 노란색 두 개는 위험이 크니 더 크게 줄이라는 뜻, 빨간색은 세션 자체를 멈추는 것, 체크무늬는 끝났다는 뜻이다. 여기서 조심할 게 블루 플래그는 같은 바퀴에서 순위 다툼 중인 차들끼리는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뒤에서 따라붙는다고 무조건 비켜주는 종목이 아니다.

 

언더컷과 오버컷

피트 전략을 부르는 이름이다. 언더컷은 앞차보다 먼저 피트에 들어가 새 타이어로 갈아 끼운 뒤, 낡은 타이어로 버티는 앞차보다 빠른 랩을 몇 바퀴 찍어서 앞차가 피트를 다녀오는 사이에 앞으로 나가버리는 방법이다. 오버컷은 정반대다. 피트를 일부러 미루고 낡은 타이어로 버티다가, 앞차가 먼저 들어간 뒤 비어버린 트랙에서 시간을 벌어놓고 나중에 들어오는 방법이다.

중계에서 한 바퀴 먼저 들어갔다는 말이 나온 뒤 두세 바퀴 지나 순위가 바뀌어 있으면 언더컷이 먹힌 것이다. 반대로 앞차가 들어갔는데도 뒤차가 계속 안 들어오고 버티면 오버컷을 노리는 중이다.

어느 쪽이 먹히는지는 서킷이 정한다. 새 타이어가 한 바퀴 만에 그립이 올라오는 곳에서는 언더컷이 강하고, 타이어가 데워지는 데 오래 걸리거나 피트레인이 유난히 긴 곳에서는 오버컷 쪽이 낫다. 여기에 피트에서 나왔을 때 느린 차 사이에 갇히는 문제까지 겹치면 계산은 더 복잡해진다. 팀 무전에서 계속 숫자를 읊어대는 이유가 이거다.

 

107% 룰

예선 첫 세션에서 그 세션 최속 기록의 107퍼센트를 넘기면 원칙적으로 결승 출발 자격을 잃는다는 규정이다. 최속이 90초였다면 96초 3을 넘긴 차는 걸린다. 너무 느린 차가 레이스에 섞여 있으면 그 자체로 위험 요소가 되기 때문에 만들어진 안전장치다.

실제로 자주 걸리는 건 비 오는 예선이다. 자기 순서에 노면이 최악이었다든가 하는 이유로 기록이 크게 튀면 순식간에 107퍼센트 밖으로 밀린다. 다만 심판진이 사정을 살펴 출발을 허가할 수 있어서, 이 규정 때문에 실제로 결승에 못 나가는 경우는 드물다. 존재는 하는데 웬만하면 발동 안 되는 최후 방어선쯤으로 보면 된다.

그래서 이 규정은 기록보다 태도를 재는 쪽에 가깝다. 차가 고장 나서 어쩔 수 없이 느렸던 건지, 애초에 그 속도로는 같이 달리면 안 되는 상태인지를 사람이 판단해서 가른다. 숫자로 선을 그어놓고 그 선을 사람이 넘겨주는 구조라 좀 이상해 보이지만, 안전 규정은 대체로 이런 모양을 하고 있다.

 

비슷해서 헷갈리는 세 가지 한눈에

 

상황 실제 차가 나오나 추월 순위 격차
세이프티카 나온다 금지 거의 사라진다
버추얼 세이프티카 안 나온다 금지 대체로 유지된다
레드 플래그 세션 중단 주행 자체 중단 재출발 방식에 따라 다르다

 

이 표 한 장만 외워도 새벽 중계에서 화면 구석 알림을 보고 당황할 일은 절반으로 준다. 나머지 절반은 어차피 해설이 설명해준다.

 

 

여덟 개 중 딱 하나만 고른다면

솔직히 말하면 처음부터 여덟 개를 다 외울 필요는 없다. 하나만 고르라면 DRS다. 이거 하나만 알아도 직선에서 뒷차가 왜 갑자기 붙는지가 설명되고, 그러면 레이스의 절반은 이해한 셈이 된다. 나머지는 중계를 두세 번 더 보는 동안 자연히 눈에 붙는다.

그러니 이번 주말에 새벽 중계를 틀어놓을 생각이라면, 이 글을 한 번 훑고 DRS 존이 어디인지만 확인하고 앉아보자. 작년의 나처럼 순위표만 보다가 잠드는 것보다는 확실히 나을 것이다.

그리고 규칙을 알고 보면 재미가 늘어난다는 말은 반쯤만 맞다. 나는 여덟 개를 다 외우고 나서도 여전히 새벽 세 시에 졸다가 중요한 추월을 놓친다. 다만 다음 날 다시보기로 그 장면을 돌려볼 때, 왜 그렇게 됐는지는 이제 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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